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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필봉 마을 굿축제와 중요무형문화제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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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훈 2012. 8. 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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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임실필봉농악 보존회가 지난 24∼25일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필봉문화촌에서 ‘마을굿 축제’가 개최되었다. 필봉 마을굿 축제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봉농악의 오늘이 있게 한 필봉 양순용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취지로 출발했다. 양순용 선생은 60~70년대 농악의 대중화에 씨를 뿌렸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도  그중 한 분이다. 당시 필봉에게서 배웠던 제자들이 현재 필봉농악보존회 단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필봉굿 자체가 마을굿이며,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농악이다. 문화재 보유자인 양진성씨가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지만, 필봉마을은 여전히 문화재의 보금자리다. 다만 70~80년대 60여 가구에 이르던 마을이 지금은 20여호로 줄면서 주민들끼리 굿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존회 단원 70여명중 마을 주민이 2명밖에 안된다. 마을굿을 이어갈 수 있는 '마을'을 꿈꾸는 게 보존회장의 바람이며 꿈이다.

 

올해 축제는 8개 지역 중요무형문화재 풍물농악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릴레이콘서트를 비롯해 아마추어 농악인이 펼치는 재능겨루기, 필봉 연희문화 농악경연대회, 풍물굿 학술세미나, 자정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밤샘 탈놀이, 색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체험과 놀이 등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하였다.

 

릴레이콘서트로 펼쳐지는 중요무형문화재 공연에는 진주삼천포, 평택, 이리, 강릉농악단과 고성오광대, 밀양백중놀이 등 8개 단체가 참여하여 지역별 무형문화재를 선보여 관람객들로부터 환호성을 받기도 하였다. 밤샘 탈놀이에는 젊은 풍물꾼이 참여해 자정부터 이른 새벽까지 신명나는 풍물굿을 펼친다.


 

 

‘생활문화 연희 재능겨루기 한마당’은 청소년, 동호회, 이주여성 등 전통연희문화에 관심이 있는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기량을 겨루었다. 농악부문 대상에는 상금 300만원이 수여되었다. 목공예 클레이 한지공예 체험과 소원풍등띄우기, 풍물캐릭터 만들기, 먹거리 체험 등 다양한 체험과 놀이 프로그램이 마련되 참가한 관광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필봉농악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 300여 년 전부터 내려온 호남 좌도농악의 대표적인 전통 마을굿이다. 보존회는 필봉문화촌에 공연 숙박 연수시설을 갖추고 2007년부터 각종 전통문화 공연, 체험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마당문화축제를 벌이고 있다.

 

 

 

<임실필봉농악(무형문화재 제11-마호)>

 

 

 

 

 전북 임실군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호남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이다. 필봉마을의 역사는 300년 정도 추정되나 오늘날과 같이 수준높은 풍물굿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00년대 좌도지역의 유명한 상쇠 박학삼 선생을 필봉마을로 초대하면서 부터이고, 2대 송주호 상쇠를 거쳐 필봉굿의 보유자였던 양순용 선생에 와서 필봉굿은 꽃을 피우게 된다.

 

허튼가락과 부들상모의 명인이었던 상쇠 양순용 선생은 필봉이 출신으로 필봉굿의 정리와 체계를 마련하였다. 그는 현재 연행되고 있는 풍물굿의 전승과 보급에도 심혈을 기울여 전국에서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필봉굿을 전수하는데 일생을 바쳐 활동하다가 1995년에 별세하였다.

 

그 후 아들 양진성 선생이 뒤를 이어 필봉굿을 전승하면서 2008년 12월에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필봉굿은 채굿가락, 호허굿가락, 영신굿, 도둑잽이굿, 수박치기, 싸잽이굿 등의 가락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앞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뒷굿중심 또는 놀이중심이 강한것이 특징
이다.

 


<진주.삼천포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서부경남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영남형 농악으로 우리나라 농악 중 최초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경남지역에 전승되는 농악으로 영남형 농악에 속하는 이 농악은 1966년 6월 29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농악 12차로 지정되었고, 이후 여러 농악이 지정되면서 제11-가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 농악의 편성은 전원이 전립을 쓰고 채상이나 부포를 돌리는 것이 다른 지역의 농악과 대조적이며, 개인놀이가 발달되어 있고, 판굿에서는 채상모와 부포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의 진법과 소고수들의 무예적 몸짓이 특징적이다.

 

현재 인간문화재로는 장구의 박염 선생과 상쇠로 김선옥 선생이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부산을 비롯한 전국에 분포한 지부활동과 전수교육, 해외공연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평택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나호)>

 

1985년 중요문형문화재로 지정 받으면서 명실 공히 웃다리농악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농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중들이 꽹과리치면서 염불하고 동냥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북, 버꾸, 호적, 나팔이 있다.


편성은 영기수(令旗手), 농기수(農旗手), 나팔수, 호적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1, 징수 2, 설장구, 부장구, 상장구, 북, 상버꾸, 부버꾸, 종버꾸, 꼬리버꾸, 상무동, 종무동, 삼무동, 칠무동, 중애(사미), 양반으로 되어있다.

 

 

농악수들은 옛날 군졸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그 위에 색띠를 걸쳐 매며 머리에는 벙거지나 고깔을 쓴다. 악기에 있어서 징과 북이 타지역에 비하여 적으며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다.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며 노래굿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만 보이는 장단으로 평택농악의 길군악칠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연성이 뛰어난 남사당패 예인들의 전문적인 연희를 받아들여 복합적으로 구성한 수준높은 농악이며, 무동놀이(어른의 목말을 타고 아이가 춤추는 놀이)가 특히 발달하였다.

 

 


<이리농악(중요문화재 제11-다호)>

익산(옛 이리)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하는 이리농악은 김형순 선생이 1953년 풍물계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이리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익산시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농악수들은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도 하는데 흰 바지 저고리에 색동달린 반소매의 검은색 쇠옷이나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상모와 고깔을 쓴다.  쇠가락에는 일체, 이채, 삼채, 외마치질굿, 풍류굿, 오채질굿, 좌질굿, 양산도가락, 호호굿, 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인사굿, 오체질굿(오른쪽으로 돈다 하여 우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긴매도지(미지기 : 쇠와 장구가 마주보고 전진후퇴), 삼방진굿, 방울진굿, 호호굿, 달라치기, 짧은매도지, 짝드름, 일광놀이, 구정놀이(개인놀이), 기(旗)쓸기 순서이다.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강릉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라호)>

강릉농악은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에 전승되어 오는 영동농악의 대표격으로 강릉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농악을 가리킨다.

 

농사풀이농악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농경생활을 흉내내어 재현하는 농사풀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강릉농악은 농기, 쇄납(날라리), 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북) 및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 연주자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청·황의 삼색띠를 두르고 무동들은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옷을 입는다.


강릉농악에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3∼4일간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악과 고사를 나는 지신밟기, 마을의 공동 기금을 걷기 위해 걸립패로 꾸며 농악을 하는 걸립농악, 모심기와 김매기 등을 할 때 하는 김매기농악, 김매기가 끝난 후 질 먹을 때 하는 질먹기, 건립굿이나 봄철 화전놀이 때 큰 마당에서 벌이는 마당굿이 있다.

 

타지역에 없는 달맞이굿(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 횃불놀이, 놋다리밟기가 있고, 두레농악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농악과 질먹기, 길놀이농악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강릉농악은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하여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성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오광대는 남부지역(낙동강 서쪽지역)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초계 밤마리 마을 장터에서 놀던 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오행설 의견이 유력하다.

 

전에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현재는 봄, 가을에 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고성오광대는 1910년경에 남촌파(南村派) 서민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시작하였고, 그 뒤에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놀이는 문둥이춤·오광대춤·중춤·비비춤·제밀주춤의 5마당으로 구성된다. 문둥이·말뚝이· 원양반·청제양반·적제양반·백제양반·흑제양반·홍백양반·종가도령·비비·비비양반·중·각시·영감·할미·제밀주·마당쇠 등 총 1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고성오광대 놀이의 내용은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신랄하지만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고성오광대는 다른 지방의 오광대에 비해 놀이의 앞뒤에 오방신장춤, 사자춤 같은 귀신 쫓는 의식춤이 없고, 극채색(極彩色)을 많이 쓰며 오락성이 강한 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오광대의 탈은 예전에는 종이로 만든 탈이 특색이었으나, 근래에는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탈을 사용하기도 하고 종이탈, 바가지탈을 쓰기도 한다. 주된 춤사위는 덧뵈기(탈놀이)춤인데 배역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 춤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반주음악으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타악기가 주로 사용된다.

 

고성오광대는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는 전통놀이마당으로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다.

 

 


<밀양백중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경남 밀양지방에 전승되는 민속놀이로써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백중은 음력 7월 15일을 중심으로 그 전후에 놀이하는 몇일동안을 말하며 밀양에서는 이 날을 흔히 '머슴의 날'이라고도 한다.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뒷놀이 등으로 이루어 진다.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오북춤 등으로 우리나라 민속무의 독특한 몸짓이 담겨져 있다. 놀이의 줄거리는 세도가 당당한 양반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오던 서민들이 서로의 애환을 달래는 풍자놀이로 엮어진다.

 

 

 


<좌수영 어방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

고기잡이놀이로서 소리가 주를 이루는 놀이이다. 한동안 전승되지 않다가 1970년 재현되여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었다.

 

1845년(헌종 11) 수영성 포어진에 어방이 설치되었는데 여기서는 어업을 장려하고 유사시에는 군량을 조달하며 어부의 수군화를 도모했다. 지금 전승되는 놀이는 3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어부들이 줄을 꼬며 부르는 〈내왕소리〉, 그물을 당기며 부르는 〈사리소리〉, 풍어를 기뻐하며 부르는 〈칭칭이소리〉 등이다. 복장은 어방의 우두머리인 방수(防水)와 배주인인 선주는 평복차림이고, 어부들은 흰 바지 저고리에 흰 수건을 두르며 줄틀·그물·가래·바구니 등의 도구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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