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군 무주읍의 중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500m 내외의 산이 많아, 읍내에는 백하산(634m)·칠봉산(521m)·마향산(730m) 등이 솟아 있다. 남대천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면의 중앙을 곡류해 금강으로 흘러들며, 하천 양안에 발달한 넓은 충적지를 중심으로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산지가 많아 버섯·약초 등이 재배되며, 양잠과 인삼 재배도 활발하다.
읍내리에 무주향교, 당산리에 무주한풍루(茂朱寒風樓) 등이 있다. 영동·금산·장수 방면을 연결하는 국도가 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읍내(邑內)·당산(堂山)·오산(吾山)·장백(長白)·내도(內島)·대차(大車)·용포(龍浦)·가옥(佳玉) 등 8개 동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은 31개). 면적 79.41㎢, 인구 9,790(2007).
무주읍 문화재로는 무주 구상화강편마암(천연기념물 249), 무주 한풍루(시도유형문화재 19), 북고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시도유형문화재 183), 북고사 신중탱화(시도유형문화재 187), 무주향교대성전(문화재자료 103)이 있다.
茂朱邑 ▣ 연 혁
-346년(백제 근초고왕 원년) : 赤川縣으로 지명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년) : 朱溪縣으로 개칭
-1414년(조선 태종 14년) : 茂朱縣으로 개칭
-1914년 5월 1일 : 茂朱面으로 개칭
-1979년 5월 1일 : 茂朱邑으로 승격
▣ 명칭유래
-1414년(조선 태종 14년) 朱溪縣울 朱溪縣으로 고치면서 무주 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다.
茂朱邑(面)의 이름은 茂朱郡(府)의 관청 소재지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읍내리(邑內里) 조선시대 府內面 邑內로 불리면서 邑內란 명칭이 생겨났고 日政時 府內面을 茂朱面으로 바꾸며 邑內里라 칭했고 茂朱府 城안의 마을이란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당산리(堂山里) 옛날 堂山이란 지명으로 부르다가 남산의 서쪽에 당미산(堂尾山)으로 부르는 당뫼(堂山)이 있어 堂山里 칭했고 堂山이란 지명은 당뫼나 堂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오산리(俉山里) 산의 모양이 자라와 같아 鼇山으로 부르다 산봉우리가 다섯이라서 五山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이 마을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많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吾茂라는 지명으로 통용되어왔는데 俉山里는 吾茂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장백리(長白里) 長白이란 지명은 남대천이 이 마을을 관류하는 데 이 川邊에 하얀 돌밭이 길게 펼쳐 있어 長白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長白里란 지명은 위와 같은 長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내도리(內島里) 금강천이 이 마을을 휘어 감고 돌아감으로 마치 섬같이 보여 내륙속의 섬이란 뜻으로 內島라는 지명으로 칭하게 되었고 內島里란 지명은 위와 같은 內島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대차리(大車里) 大車里는 행정구역이 다른 조선시대 서면의 大車마을과 府內里의 車山 마을이 있는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茂朱面의 같은 행정구역에 속하면서 大府의 大자와 車山의 車자를 따서 만든 이름으로 大車里란 지명은 위와 같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용포리(龍浦里) 龍浦里는 부남을 거쳐 내려오는 금강물이 용처럼 흐르는 곳으로 옛날에는 금산으로 가는 나루가 있던 곳이라서 龍浦라는 지명이 생겼고 龍浦里란 지명은 위와 같은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가옥리(佳玉里) 佳玉里란 명칭은 가랑개골(佳林洞)의 佳자와 더옥골(加玉)의 玉자를 떠서 만든 법정리의 명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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