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이면 왠지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만 같은 따사로운 봄날씨 연일 계속되고 있네요. 혼자 걸어도 좋고, 누군가와 같이 걸어도 좋을 노란 봄꽃 가득한 구례 산수유 마을을 금년에도 찾았다.
지리산 자락에 봄소식을 알리며 온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구례 산동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대표 산수유마을이다.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전남 구례읍과 전북 남원시의 딱 중간 지역이자 지리산 노고단과 성삼재의 서쪽 산아랫 동네다.
지리산 성삼재 고갯마루의 맑은 물방울들이 모여 이 산수유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서시천 개울을 이룬 뒤 구례읍으로 달려 섬진강 품에 안긴다. 겨우내 얼었던 개울도 녹아 세찬 물결로 내달렸고 주변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 노란 꽃들과 예쁘게 조화를 이뤘다.
몸에 좋은 산수유를 테마로 한 구례 ’산수유꽃축제’가 오는 3월29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원에서 막을 올린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구례 산수유꽃축제는 31일까지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행사와 풍성한 문화 예술 공연을 선보인다. 금년 메인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이 바로 제가 작년에 촬영하였던 사진으로 구례사진공모전에서 수상된 작품이다. 보는내내 기분이 업되더군요.
지리산 산수유 입에 넣으면 지리산 처녀의 행기(향기)가 나네.
지리산 산수유 입에 넣으면 지리산 처녀와 입맞춘다네.
지리산 산수유 입에 넣으면 입맛이 시큼 춤(침)이 흐른다”
구례 산수유마을인 산동에 전해내려오는 산수유 노랫말이다. 산수유를 입에 넣으면 지리산 처녀 향기가 나고 또한 입맞춤을 한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산수유에 무슨 사연이 있길래…
산수유는 수확 후 건조시키면서 속의 씨를 발라내야 하는데 주로 여자들이 이빨로 깨물어서 깠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데 턱 아래 그릇을 받치고 산수유 한 알 한 알 입에 물고 앞니로 까서 그릇에 뱉는 작업이다. 그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산더미 처럼 쌓인 산수유를 어떻게 다 그렇게? 그래서 이 산동마을 처녀들은 일생을 산수유 까느라 앞니가 다 닳아 보기 흉한 모습이 됐다고 한다.
산수유를 먹으면 지리산 처녀의 향기가 나고 입맞춤을 한 것이라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또 몸에 좋은 산수유를 평생 입으로 까온 산동처녀와 입맞춤하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보다 좋다고 소문이 나 이웃인 남원과 순천 등지에서 며느리 삼으려 경쟁이 치열했다고도 한다.
구례 산수유의 대표적 군락지인 산동면 일대는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곳일만큼 대단위 산수유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어 매년 3월말이면 노란 물결 가득한 멋진 산수유 꽃을 볼 수 있다.
산동. 왠지 귀에 익은 지명이었다. 선뜻 중국 산동성이 떠올랐다. 설마 했는데 중국 산동성과 관련이 있었다.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의 한 처녀가 이 마을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나무 한 그루를 갖고와 지금의 산수유마을이 됐다고 한다. 그 때 갖고 왔다는 산수유 시목(始木)도 산동면 계척마을에 고목으로 자라고 있다. 이미 1000살이나 됐을 만큼 나무는 늙어있었고 지지대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가지를 가누고 있었다. 구례군 산동(山洞)면은 ‘지리산 골짜기 동네(산동네)’라는 의미지만 어찌됐건 중국의 산동(山東)성과 관련은 있었다.
산동면 일대의 산수유 군락지는 생각보다 많이 넓어 제대로 보실려면 지도를 하나 챙겨 돌아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략 사랑공원을 시작해서 축제 행사장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상위마을, 하위마을, 반곡마을, 현천마을 등을 둘러보시면 제대로 산수유 구경을 하신거라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산수유 꽃말이 "영원한 불멸의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마을 벽면 한쪽에는 시화가 그려진 벽화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곳 구례 반곡마을 태생인 홍준경 시인의 시를 이렇게 마을 곳곳에 벽화로 그려 놓았다. 봄바람 나부끼는 산수유 꽃담길에서 시 한수 읊으며 걸어보는 것도 운치있을 것 같다.
산동에는 마을 단위별 산수유 군락지가 있다. 상위마을과 달리 반곡마을은 특히 개울가 옆 산수유 군락지가 넓게 퍼져있는데 데크를 따라 걷는 멋이 일품이다. 맑은 개천가에는 봄풍경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파릇한 새싹, 노란 산수유꽃, 알록달록 상춘객 뭐든 다 봄풍경 소재가 된다.
또한 이곳 상관마을의 ‘산동애가(山洞哀歌)’로 전해져 오는 백부전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백부전(본명 백순례)은 일제 징용으로 큰오빠를 잃었고 둘째오빠도 죽음으로 내몰렸다. 마지막 남은 셋째오빠도 여순사건 직후 끌려갈 찰라에 어머니가 집안의 대가 끊어질 것을 크게 걱정하자 열아홉 백부전이 “내가 대신 죽을 테니 제발 오빠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해 대신 생을 마감했다. 오빠는 살아 대를 이을 수 있었다. 해방 직후 혼란했던 우리의 현대사가 결국 아무 영문도 모른 한 소녀의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케 한 것이다. 이때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열아홉 소녀는 한 맺힌 노래(산동애가)를 불렀는데 당시 군경을 통해 동네주민들도 따라 불러 그 노랫말이 구슬프게 전해오고 있다.
<백부전의 ‘산동애가(山洞哀歌)'>
“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로
가마귀 우는 골에 병든 다리 절며절며 / 달비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 가마귀 우는 골에 나는야 간다
노고단 화엄사 종소리야 / 너만은 너만은 여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나혼자 총소리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
이번에는 하얀 눈꽃을 뿌려 놓은 듯한 봄 풍경을 만나기 위해 광양 홍쌍리 매화마을로 찾아간다. 봄의 소식을 일찌감치 알리는 꽃으로는 '매화'를 꼽을 수 있다. 엄동설한에 움을 틔워 봄꽃을 준비하는 매화야말로 '봄의 전령사'라 부를 법하다.
「제16회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가 열리는 섬진강변 매화마을에는 눈꽃이 핀 것처럼 수많은 매화꽃이 장관을 이룬 가운데, 은은하고 달콤한 매화 향기가 봄이 찾아온 것을 알리고 있다.
3월 23일부터 31일까지 9일간 열리는 매화문화축제는 "섬진강, 광양 매화, 그윽한 향기 속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다채롭고 짜임새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전야제와 개막식, 국제행사, 경연대회, 나라별 전통복 대여, 전국 농산물 판매부스 임대, 각종 공연, 체험 부스 운영 등 관광객이 즐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알차게 준비했다.
금년에는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축제 주행사장 부지 정비와 섬진강에 임시부교를 설치하여 하동 만지마을에서 주차한 후 관광객들이 걸어서 축제장을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매화마을에 찾아간 날 전국에서 몰려든 상춘객들로 섬진강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온통 주차장으로 변하다시피했다.
광양 홍쌍리 청매실농원은 하얀 매화꽃으로 눈꽃을 뿌려놓은듯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축제의 주 무대인 청매실 농원은 전남 광양군 다압면에 위치한 마을로 뒤로는 백운산, 앞으로는 섬진강이 감싸고 있는 형태다. 산 아래 둔덕과 산자락에 매화가 만발하게 되면 섬진강 주변에 마치 자욱한 꽃구름이라도
내려앉은 듯 장관을 이룬다. 매향에 이끌려 산책을 하다보면 청매실농원의 진수를 체험케 된다.
청매실농원은 율산 김오천 옹이 국내최초로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시작한 곳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항아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무심코 시작한 매화재배는 규모가 커졌고 며느리이자 매화재배의 명인이라고 불리는 홍쌍리 여사의 끊임없는 품종개량과 매화에 대한 열정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매실농원의 홍쌍리 대표는 신지식인이자 국가지정 식품명인 제14호의 칭호를 가진 매실명인이다.
피로회복과 해독작용에 탁월한 매실과 함께 심신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주변 경치 속에 젖어 들다보면 매화마을에서의 짧은 일정도 훌쩍 지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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